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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의 몰락

literary note 2009. 5. 19. 03:08

뱀파이어는 항상 몰락을 하는 것일까? 해피엔딩을 일종의 문화적 제도로 삼은 헐리우드에서조차 뱀파이어의 끝은 몰락이다. 그들에겐 삶이 아예 없거나 삶을 지속할 만한 존재론적 근거가 없는 것일까? 흡혈귀가 바이러스 감염과 같은 질병이기 때문인가? 왕성한 식욕과 건장함, 그리고 나약한 인간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공간을 초월하는 힘과 탄력을 가진 불멸의 존재 같은데도, 그늘진 창백함과 충혈된 동공은 항상 죽음을 연상케 하는 불쾌한 비정상의 비쥬얼을 환기한다.


대부분의 작가나 영화감독은 자신의 종교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무턱대고 흡혈귀를 질병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어떤 질병? 인간의 의학이 규범화한 특정 징후를 보이는 그러한 질병? 그러나 딱히 의학적 소견으로 진단을 내릴 만한 징후도 없지 않은가? 다만 혈액을 섭취하지 않으면 기침과 고열과 백화현상 비스무리한 신체적 변화들이 있기는 하다. 결국 그들의 몰락은 피의 문제란 말인가? 마늘에 대한 특이한 혐오를 포함해서, 피를 먹는다든가 하는 식품에 대한 이상취미 때문에? 그러나 자연적으로 그가 갈구하는 음식이 그의 신체를 해체시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에게는 피가 독이 아니라 생명이 아니던가? 그의 문제는 피의 섭취가 아니라 오히려 섭취를 방해하는 다른 것에 있어 보인다. 허기로 인한 인간의 죽음을 질병으로 보지 않듯이, 허기를 채우기 위한 인간의 무자비한 음식 섭취를 질병으로 보지 않듯이, 많은 흡혈 동물들이 그렇듯이, 흡혈성 역시 질병이라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의학적 생물학적 소견 외의 다른 원인, 가령 피에 대한 금지된 욕구 때문에 어쩔 없이 생명을 죽여야 한다는 생득적 때문에? 종교적 질병으로 인해 그는 항상 십자가를 피해 다니는 것으로 설정된다. 그러나 최근의 영화에서는 십자가가 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종교적 질병으로부터 치유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 안의 모든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을 파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뱀파이어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전체가 원죄의 스캔들이라고 하는 종교적 질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생명이란 죽음으로의 길이고, 창조란 해체이며, 영양이란 분해와 소화이며, 대낮은 밤에서 밤으로의 이행이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선천적 죄를 부과해서 존재를 부정하는 방식 자체가 가지는 졸렬함도 있다. 그것은 구차하고도 궁색한 성직자들의 해묵은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뱀파이어 역시 교설의 공포가 기만적임을 이제는 깨달은 같다. 뱀파이어의 종교적 몰락의 시대는 구식이 된지 오래다.


궁금한 것은, 어째서 뱀파이어가 갈구하는 것이 동물의 피가 아니라 반드시 인간의 피인가? 염소의 피라든가 돼지나 닭이나 소의 피로 인간처럼 그럭저럭 살아갈 있다면, 뱀파이어 자신도 몰락하지 않을 있지 않을까? 나아가 동물들을 사육하고 재배를 하여 농사를 지어 살아가는 방식도 생각해 있지 않을까? 고기는 내다 팔아 부수입을 올리고. 밤과 낮을 바꾸어 살아가야 하는 불가피한 조건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그의 재배나 목축활동에 치명적인 한계가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과학만능주의 시대에 피의 생화학적 인공생산 역시 생각해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그의 몰락은 사려(prudence) 필요로 하는 노동의 부재, 말하자면 창세기적 상상계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현실 인식의 부재 혹은 철없던 시절에 길들여졌던 편식습관에의 고착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식품가공을 혐오하는 결벽스러운 자연주의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까? 하지만 널린 것이 인간의 피가 아닌가? 노동이나 과학은 필요치 않다. 인간은 많이 있다. 심지어는 너무 많이. 그다지 피를 아끼는 종족도 아니며 오히려 남발하지 않는가? 인간이 많은 세상은 뱀파이어에겐 아직도 하나의 낙원이다. 오히려 동료 흡혈귀가 너무 많아져 피의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지 않도록 동료 흡혈귀와의 야만적 경쟁이 필요할 뿐이다.


피에 대한 욕구가 불가피하게 인간과의 전쟁을 초래하기 때문일까? 뱀파이어의 피에 대한 욕구 만큼이나 인간의 생존 욕구도 있으니까. 그래서 뱀파이어는 항상 인간과 불화하고 그와 욕구의 전쟁을 치른다. 결국 뱀파이어가 몰락한다면, 주로 미국식 뱀프 영화들이 그렇듯이, 인간과의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인가? 힘이 딸려 도저히 되겠으면 예외 없이 아버지를 호출하여 (이미 치유가 것도 모르고) 십자가를 내밀거나 성수를 뿌려대는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힘과 탄력으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그가? 아무리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아대도 해체되지 않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단단한 육체와 끈적이는 피를 소유한 불사신이? 말도 된다. 인간과 전쟁을 치르고 대립적일 밖에 없기 때문에 몰락해야 한다면, 그것은 뱀파이어를 우리 인간의(특히 미국식 영웅으로서의 인간) 관점에서 결과일 뿐이다. 뱀파이어는 자신의 역사가 없단 말인가? 대낮의 노동과 빛의 역사 만큼이나 잠과 달과 어둠의 역사가 있다.


어느 모로 보나 뱀파이어의 몰락은 필연적 근거가 없어 보인다. 그는 의학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몰락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는 심지어 우월하기까지 하다.


물론 가지 . 어쩌면 가장 많이 야기되는 근거라고도 있는 , 바로 윤리적 질병 때문이라는 이론이다. 말하자면 인간과의 전쟁이 아니라 근본적인 전쟁, 자연과의 전쟁 때문이라고 할까? 쉽게 말해 자연의 자정능력이 감당할 없는 과도한 갈증과 식욕으로 인한 자멸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영화감독이나 작가들은 항상 흡혈귀의 '' 방탕함을 연상시키는 관례 같은 것이 있는 같다. 다른 남자의 여자를 유혹하여 그녀들의 뽀얀 목에 깊고 진한 정욕의 붉은 징표를 꽂아대고, 식욕을 채워줄 인간을 찾아 날카로운 송곳니로 무자비하게 천공을 낸다. 끊임없는 쾌락에 대한 갈증. 결과 모든 자원의 고갈 아니면 자신의 고갈. 이것이 뱀파이어라고 하는 윤리적 질병의 몰락의 절차이다. 그러나 욕구가 자연을 초월하고 이탈하고 자정능력을 능가하는 것이라면, 흡혈귀는 자연의 질서 안에 있는 자연적 존재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고 초자연적 존재도 아니지 않은가? 그는 대낮의 빛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물론 기독교에서 빛과 십자가의 본질은 물리적 성질이 아니라 초자연성이지만, 어떤 뱀파이어는 선글라스에 선탠 크림을 칠하고 대낮에 출몰한다). 어쨌든 그는 먹어야만 하고 수면이 필요하며,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자신의 육체로 파고든다. 그는 자연을 초월한 존재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연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사실 그의 과잉 욕구의 진정한 의미가 이것이다. 욕구의 초과는 실상 결핍에 근거하고 있다. 결국 윤리적 질병에 의한 몰락이라는 이론에 따르면, 뱀파이어는 건강하지도, 식욕이 왕성하지도,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지속시킬 만큼 충분한 참을성이 있지도 않다. 지속 가능한 건강이란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는 폭과 깊이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식가이지만 실은 편식가일 뿐이며, 초월한 보이지만 실은 신경증 환자이며, 당찬 활보의 소유자이지만 실은 어둠 속에 얼어붙은 내성적 히키코모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연적이지도 그렇다고 초자연적이지도 않은 그의 아노미가 이미 그를 창백하게 죽은 존재로 규정한 것일 있다.


그런데 우리는 뱀파이어의 아주 기이한 몰락을 목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박찬욱의 <박쥐(Thirst)>에서는 특이하고도 어이없게도 뱀파이어가 자살을 선택한다. 법적이라고 해야 할지 종교적이라 해야 할지 윤리적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바이러스 증상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이라 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종류의 '죄의식' 혹은 '양심' 휩싸여 있는 흡혈귀를 보게 것이다. 바이러스 때문이든, 사로잡힌 욕망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든, 아니면 살인을 했기 때문이든, 죄의식의 내용은 자신의 존재가 자연으로부터 이탈하여 자연과 인간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강박이다. 그는 갈증과 욕망을 숨기고 싶어하고 부끄러워하고 저주한다. 그로 인해 양심적인 괴물이 되어 가지 인도주의적 노력으로 양심을 상쇄하고자 한다. 죽어가는 사람(남에게 무엇이든 주길 좋아했던)에게서 약간의 혈액을 나누어 섭취한다든가, 기증된 혈액만을 받는다든가, 살인이 아니라 자살을 도와준다든가 등등. 나아가 성실한 괴물은 피의 농업이나 목축이라도 기꺼이 태세다.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양심도 없으며 식욕과 갈증이 대단히 왕성한 여인-뱀파이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어쨌든 여기서도 뱀파이어는 전쟁을 치르다가 몰락한다. 하지만 무엇과 전쟁을 치른 것일까? 흡혈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전혀 다른 종이 되었을지도 모를 그를 자살로 이끈 것은 깊고도 질긴 어떤 관념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나아가 정상적이고 윤리적인 인간이라고 하는 관념! 자신이 새로운 종이 모든 가능성을 부정하게 하는 만성적 질병, Human! 질병은 뱀파이어가 아니라 바로 인간성이다. 대낮이 주는 기쁨도 밤이 주는 기쁨도 그렇다고 다른 인간이 주는 기쁨도 없이, 단지 주기적으로 모여 마작으로 시간을 때우거나 성령을 기다리며 기적을 바라는 병든 반복의 소유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상인임을 의심 없이 자부하며 다른 모든 존재를 비자연적 괴물로 여기는 고착병. 그는 뱀파이어 자신의 윤리가 아니라 인간의 윤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여인-뱀파이어는 소심한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인간인줄 알아?" 뱀파이어는 미결정된 존재이다. 그는 부유한다. 그러나 땅에 발을 내딛고자 , 어딘가에 자신의 힘겨운 육신을 정착시키려 , 주로 인간이라고 하는 만성적 질병에 안착하고자 , 그는 몰락한다.


뱀파이어는 종류의 전쟁을 치르는데, 하나는 갈증과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성과의 전쟁이다. 모두를 포기할 없을 , 그는 스스로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고통스러운 반복을 종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