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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Duration) 안에서의 포함(encompass)의 한 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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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Duration) 안에서의 포함(encompass)의 한 예

literary note 2008. 11. 22. 22:24

들뢰즈는 베르그송이 지속에 부여한 분할과 연속의 힘보다, 더 심오하고 더 훌륭한 힘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힘(the power to encompass itself)"이다.

. . . 물의 흐름, 새의 비상, 내 삶의 속삭임은 세 가지 흐름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나의 지속이 그 흐름들 중 하나에 속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나머지 두 흐름들을 포함하고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왜 두 흐름은 안 되는가? 가령, 나의 지속과 새의 비상은 왜 안 되는가? 왜냐하면 두 흐름은 세 번째의 다른 흐름 안에 포함되지 않으면 공존한다거나 동시적이라고 말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새의 비상과 나의 지속이 동시적이 되려면, 나의 지속이 둘로 나뉘어져야 한다. 그래서 나뉘어진 또 다른 지속이, 새의 비상을 포함하고, 동시에 나의 원래 지속도 포함함으로써, 나뉘어진 지속 안에서 원래의 지속이 반영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흐름들의 근본적인 삼중성이 있다.(Bergsonism, 80)

지속 안에서의 포함을 설명해주는 한 가지 예가 있다. 영화학자 Bela Balazs는 이 포함관계를 이렇게 말한다.

[ ... ] 하나의 멜로디는 시간의 차원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면 첫 음이 그 멜로디의 한 요소가 되려면, 오로지 그 첫음이 다음에 나올 음을 지시해야만 하고, 분명히 그 첫음이 계속 이어지는 다른 음들과 관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지막 음은 아직 얼마간은 연주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미 첫 번째 음 속에 멜로디를 자아내는 요소로서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음이 나와 그 멜로디가 완성되려면, 우리가 그 멜로디를 따라 들으면서 그 첫 번째 음을 기억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 음들은 시간의 연속 속에서 다른 것이 나오면 그에 잇따라서 소리가 난다. 따라서 그 음들은 하나의 실제적인 지속이 있다. 그러나 멜로디의 일관된 선율은 시간의 차원이 아니다; 그 음들의 서로간의 관계는 시간 속에서 연속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 멜로디는 점진적으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첫 음이 연주 되자마자 이미 하나의 완전한 실체로서 존재성을 갖는다.(Bela Balazs, Theory Of The Film, 1952, "Melody and Physiognomy" 중에서)

하나가 다른 하나와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그 안에 바로 그 다른 하나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의 멜로디가 가능하려면, 그 멜로디를 이루고 있는 각각의 음들이 다른 음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지속이란 잇따르는 것들의 집합이 아니라 포함 관계로 정의할 수 있다. 실질적 지속이란 거짓된 연속이 아니라, 즉 따로 떨어진 것이 연속의 효과만 내는(만화, 몽따쥬처럼) 것이 아니라, 물의 흐름처럼 실제의 연속이다. 이 포함관계를 윤리적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해 뭔가를 느낀다면, 그 대상속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내 안에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사물에서 신을 보고, 신에게서 인간을 보는 것은, 우리 안에 신이 있거나, 사물 안에 신이 있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엇인가를 느끼는 활동은 대상을 내 안아서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가 된다'는 말의 윤리적 정의가 이것이다.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간 속에서의 공존을 의미한다.